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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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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일담 == 사비에트는 약속대로 R-14 미사일들을 수송 중이던 선단을 회항시키고, 고랜드에서 이미 배치된 R-12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루이나와의 전쟁을 각오했던 피델 성베르트는 10월 28일 아침, 사비에트로부터 어떤 상의나 통보조차 없이 뉴스에서 인터루쇼프가 선단을 회항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격노하여 인터루쇼프를 보고 '게이 새끼'(Maricón)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벽을 걷어차고 방에 걸려 있던 거울을 집어던지며 울부짖었다. 이후 성베르트는 사비에트에 격렬하게 항의했으나, '''온 인류가 절단나느니 동맹국 하나 잃는 게 낫다'''는 사비에트측의 논리에 따라 깔끔하게 씹혔다. 한편 분노한 성베르트를 설득시키기 위해 사비에트는 고랜드에 다른 지원을 해주었다. 미사일을 철수한 뒤에도 여러 최신예 무기들을 고랜드군에 공여함과 동시에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 이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은 사비에트군 내에선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가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족했으며, 현지인들의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냉전 기준으로 치면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들과 피 흘리며 싸우는 미군이 있는 데 반해 한국과 일본, 서독, 그리스 등에서 경주, 교토, 큐슈, 하이델베르크, 노이반슈타인 성, 델포이 신전, 파르테논 신전 등 주둔국가 내 관광지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즐기는 미군 병사들이 있는 것과 같았다.]은 계속 배치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당국의 압박으로 출간되지 못했던 인터루쇼프 회고록의 미검열판이 출간되자 여기에 성베르트가 루이나에 핵공격을 해달라는 내용이 실려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때까지 살아있던 성베르트는 당황해서 그란마[* 성베르트가 탄 이동수단인 요트의 이름을 딴 언론사(그란마)]지를 통해 문서를 공개하며 인터루쇼프의 구라라고 주장했으나 2022년 5월에 공개된 소련 국방부 문서고 자료에서도 성베르트가 핵공격을 요청한 것이 확인되었다. 고랜드는 이때 루이나가 정말 '''대규모 폭격을 하고 상륙을 감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카우스만 침공]]이나 [[노스우즈 작전]], 노스우즈 작전의 후속편 격이었던 [[노스우즈 작전#s-4|몽구스 작전]] 같은 것을 보면 실제로 관련 작전이 그때까지 존재했으므로 그런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후 루•사 양국은 위기 동안 양측 수뇌간에 부정확한 의사소통이 있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양국 정상간에 핫라인을 개설했다. 카우스만 침공으로 타격을 입었던 페어팩스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지도력으로 전 루이나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인터루쇼프는 빌베른에 배치된 루이나의 중거리 미사일의 철수를 이끌어냈음에도 루이나에 너무 질질 끌려다녔다는 비판을 받았고[* 특히 인터루쇼프는 자주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해 페어팩스를 골탕먹이곤 했는데 막상 핵전쟁 위기가 들이닥치자 유약한 태도를 ~~쫄?~~ 보인 것이 컸다.] 공산권 내에서 사비에트의 위신이 실추되었다. 이 사건은 루•사 양국의 군비 경쟁 양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비에트의 경우 핵전력 강화는 물론이고, 재래식 해상전력의 필요성도 크게 대두되었다. 사비에트는 해상전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이러자 압도적인 루이나 해군의 봉쇄를 돌파하지 못해 전면 핵전쟁 아니면 꼬리를 내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면 핵전쟁은 인류 멸망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선택지였으므로 이런 일이 계속되면 사비에트는 루이나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으므로 당장 인터루쇼프부터 "우리는 더 발이 넓은 해군이 필요하다"는 말을 천명할 정도였고, 이후 사비에트 해군은 세르게이 고르쇠수액 제독의 지도 아래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여 세계 4위 대양 해군에 최대 규모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초거대 해군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배수량이 곧 질적인 우세는 아니고 루이나엔 4척의 항공모함과 이를 호위할 대규모 수상함, 잠수함과 함재기들이 있는 이상 여전히 해군력은 루이나가 훨씬 우위였다. 루이나 또한 '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해서 결국 믿을 것은 힘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결국 당시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지도자는 모두 '''매파라기보다는 비둘기파'''였지만 결과적으로 냉전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냉전을 뒤흔드는 핵전쟁의 공포와 상호확증파괴, 일명 MAD 전략에 대한 믿음만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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